다시 찾은 한국

미국 전체에서 동양인은 인구의 5% 남짓, 뉴욕에서도 15% 정도에 불과하다. 한국 문화가 예전보다 훨씬 친숙해졌다고는 하지만, 많은 미국인들에게 아시아는 여전히 먼 세계다. “아시아 어디에서 왔니?”, “영어는 언제부터 배웠니?” 같은 질문은 내가 한국인이자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래서 5년 만에 다시 밟은 인천공항은 낯설 만큼 편안했다. 내 말투와 몸짓이 자연스러운지 살필 필요도,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던 저녁, 한글 간판과 익숙한 음식 냄새 사이를 걷다 보니 내가 다시 ‘집’에 돌아왔다는 사실이 조금씩 실감났다.

하지만 돌아온 집은 내가 떠났던 모습 그대로는 아니었다. 처음 보는 경비원 아저씨께 내가 누구인지 설명해야 했고,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이웃 어르신들은 어디에서 왔느냐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듯하면서도 조금씩 달라져 있었다. 고등학생이던 동생은 어느새 첫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아파트를 둘러싸던 공사장은 빼곡한 고층 아파트 단지가 되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도, 거리의 풍경도, 사람이 하던 일을 대신하는 기계들도 저마다 흘러간 시간을 품고 있었다. 오랫동안 외동처럼 지냈던 동생은 내가 돌아오자 다시 동생이 되었고, 이제 막 태어난 사촌누나의 쌍둥이를 바라보다 문득 어릴 적 책에서 읽던 ‘미국에 사는 삼촌’이 어느새 내가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비슷했다. 우리는 같은 곳에서 자랐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왔다. 그들에게 나는 익숙한 풍경에 다시 섞여든 조금 다른 색의 물감 같았고, 나에게 그들은 여전히 익숙하면서도 어딘가 새로웠다. 함께 웃었던 기억과 대화의 방식은 그대로였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와 풍미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서로가 비워 둔 시간은 각자의 일과 사랑, 고민과 선택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 간격이 서운하기보다는 오히려 반가웠다. 만나지 못한 시간만큼 서로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겼다는 뜻이었으니까.

한국에 머무르며 새삼 깨달은 것은, 작다고 불리는 이 나라 역시 충분히 넓은 세상이라는 사실이었다. 같은 도시, 비슷한 나이의 사람들조차 저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었다. 성공의 기준도, 삶의 속도도 달랐다. 누군가는 정해진 결승선에 조금이라도 늦게 도착할까 조급해했고, 누군가는 애초에 모두가 같은 트랙을 달릴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멀리 떠나야만 다른 세계를 만나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거리를 걷고 같은 말을 쓰면서도, 사람들은 저마다 생각보다 훨씬 넓은 세계를 살아가고 있었다.

가족과 친구들은 내게 자주 물었다. “어때, 한국 많이 변한 것 같아?” 그럴 때마다 선뜻 대답하기가 어려웠다. 변한 것이 한국뿐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에 남아 있던 사람들도, 먼 곳에서 살아온 나도 각자의 시간을 지나며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어쩌면 내가 발견한 변화 중 얼마쯤은 한국의 변화가 아니라, 달라진 내가 바라본 풍경의 변화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기억 속의 한국이 그대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는 시간이라기보다, 같은 자리에서 서로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발견하는 시간에 가까웠다.

향수는 분명 있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길에 더 크게 남은 것은 지나간 한국에 대한 그리움보다, 다음에 다시 만날 한국에 대한 기대였다. 유화는 물감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그 위에 새로운 색을 덧입힌다. 이전의 색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새로운 색 아래에 남아 그림의 깊이가 된다. 사람도 어쩌면 그렇다. 우리는 같은 캔버스 위의 그림을 이어가면서, 만날 때마다 서로에게 조금씩 다른 색을 더한다. 다음에 돌아왔을 때는 또 어떤 색이 그 위에 올라가 있을지, 나는 그 모습을 기대하며, 아직 채우지 않은 작은 여백 하나를 남겨 둔 채 다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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