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주름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는 만나기만 하면 꼭 꺼내는 이야기가 있다. 초등학교 시절 함께 다녔던 교육원에서 만들었던 다리 이야기다. 플라스틱 구조대를 이어 다리를 만들고, 그 위에 무게를 하나씩 올려 얼마나 버티는지를 겨루는 대회였다. 어쩌다 반 대표가 된 우리는 밤을 새워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구조를 고치고 발표 자료를 만들었다. 같은 옷을 입고 발표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했는데, 마땅한 옷이 없어 집에 있던 2002년 월드컵 붉은 악마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운 두 초등학생이 새빨간 티셔츠를 입고 제법 진지한 얼굴로 발표를 했다. 그리고 우리의 다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다. 뒤에서 일등이었다.
친구는 아직도 그 이야기를 하면 조금 창피해하는 것 같다. 나는 다리가 얼마의 무게를 버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 전날 밤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생생하다. 이메일을 보내고 답장을 기다리며 몇 번이고 받은 편지함을 들락거리던 밤. 그러다 어느 순간 창밖이 밝아졌을 것이다. 아마 그때 처음 알았던 것 같다. 무언가에 정신이 팔리면 밤 하나쯤은 저절로 사라지기도 한다는 것을. 우리가 만든 다리는 이론적으로는 견고했으나 실제로는 연약했다. 그렇다고 그 다리를 만들었던 시간까지 실패였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다.
친구는 어릴 때부터 무언가를 좋아하면 그 안쪽까지 들여다보는 아이였다. 자동차를 좋아했는데, 멋진 차의 겉모습뿐 아니라 엔진과 부품까지 꼼꼼하게 그렸다. 조금 더 자라서는 새로운 기술을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직접 만들었고, 대학에서는 정말로 자동차를 만들어 운전했다. 자율주행이라는 말이 지금처럼 익숙해지기도 전에 이런저런 실험을 거듭하던 모습도 기억난다. 한번은 비행기가 하늘에 뜨기 위해 너무 많은 연료를 태우는 비효율적인 구조라며, 언젠가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겠다고 했다. 지금 그가 말 그대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그 시절의 아이가 지금의 자신을 본다면 그리 낯설어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동안 나는 바다 건너 미국 동부에서 내 시간을 살았다. 학교를 다니고 일을 하며 내가 고른 문제도 풀었고, 고르지 않은 문제와도 오래 씨름했다. 밤을 새우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더 이상 신나지 않았고, 이메일을 기다리는 마음도 설렘보다는 걱정에 가까워졌다. 그래도 잘 풀리지 않는 것을 오래 붙들고 있다가 다시 한번 해보는 버릇은 남았다. 친구 역시 내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움직이지 않는 모델을 다시 움직여보고, 실패한 것을 뜯어고쳐 또 시험했을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삶을 자세히 알지 못한 채 꽤 오랜 시간을 보냈다. 다만 저쪽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겠거니 했다. 같은 곳에서 출발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밤을 보내고 있었던 셈이다.
그 친구가 어린 시절 내게 권해준 책 중에 “시간의 주름”이라는 SF 소설이 있었다. 내용은 이제 가물가물하지만, 아주 멀리 떨어진 두 점도 더 높은 차원에서는 공간을 접어 서로 맞닿게 할 수 있다는 발상만큼은 오래 남았다. 종이 양 끝에 점을 찍어놓으면 멀리 떨어져 있지만, 종이를 한 번 접으면 두 점은 금세 만난다. 당시에는 그저 먼 우주를 여행하기 위한 기발한 상상쯤으로 여겼다. 그 후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가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마침내 서로 알지 못했던 사람들과 가정을 이루었다. 함께 보낸 어린 시절이 먼 옛날의 일이 되어갈 무렵, 우리는 각자의 배우자와 함께 네 사람이 되어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자동차 엔진을 그리던 아이는 어느새 미국에서 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요즘에는 무엇을 연구할지만큼이나 무엇을 가르칠지를 고민한다고 했다. 존경하는 선배에게 교수의 본분은 연구뿐 아니라 가르치는 데에도 있다는 말을 들은 것이 오래 마음에 남았던 모양이다. 어제 배운 기술이 내일이면 낡아버릴지도 모르는 세상에서, 무엇을 가르쳐야 오래 남을지를 생각한다고 했다. 한때 기계가 움직이는 원리를 궁금해하던 아이가 이제는 자신이 배운 것 중 무엇을 다음 세대에 건네줄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잠자리에 들었을 때 그 오래된 책이 다시 생각났다. 붉은 악마 티셔츠를 맞춰 입고 플라스틱 다리 앞에 서 있던 두 아이가 이제는 각자의 배우자 옆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친구는 자동차를 만들고 로봇을 움직였고, 나는 바다를 건너 내 몫의 문제들과 씨름했다. 서로가 보지 못한 시간이 함께 보낸 시간보다 훨씬 길어졌다. 그런데도 오래된 친구를 만나면 가끔 그 긴 세월이 믿을 수 없을 만큼 얇아진다. 그날의 저녁은 유독 그랬다. 우리가 처음 만든 다리는 얼마 버티지 못하고 무너졌지만, 그날 밤 우리 안에 만들어진 어떤 것은 이십 년의 무게를 견디고도 남았다. 어쩌면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차곡차곡 접어온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서 맞닿아 있는지도 모르겠다.